부산 북카페 담_도심속 그들만의 공간
Published by Ironwoo2,
매일 30도를 웃돌며, 온몸을 땀으로 적셔주던 계절이 지나가고,
이제는 해가 지면 추레한 셔츠하나라도 걸쳐야 할것 같은 날씨가 왔다.
눈을 뜨자마자 해는 초저녁처럼 어둡고, 금방 구워낸 빵이 금새 축축해질것 같은 습기가 온몸을 덮쳤다.
다행히 바람은 시원하다. 이런 날씨가 가장 좋은 날씨다. 누군가는 "꿉꿉하다, 눅눅하다, 기분나쁘다"등의 표현을 하지만,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 하면서도, 안경에 한 두 방울만 스쳐지나가듯이 내리는 비와 약간의 바람, 흐린 구름들이 뒤덮은 하늘.
이런 날씨에는 당연히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레 발걸음은 커피숍으로 간다.
내가 항상 찾는 "그 곳"들로.
익숙하다 못해, 몽유병에라도 걸린다면 정신 없이도 갈듯한 그 카페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제 "블루노트" 카페 한켠에 누군가 읽다가 스무페이지쯤에 자신이 다시 읽겠노라 표시해두고는,
다시는 읽을것 같지 않은 카페관련 책을 봤기 때문일까? 오늘은 새로운 곳을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20분 이상 걸리는 곳은 도저히 몸이 움직여 주질 않는다.
결국, 시큰거리는 오른쪽 손목을 대신해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틱틱거리며
동네 근처에 혹시 뭔가 오늘 갈만한 곳이 없을까 찾아봤다.
검색 : "대연동 카페"
우연히 사진 한잔을 딱 보고는 위에 적은 기분과 딱 맞는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대연동 BOOK CAFE DAM"
가정집을 개조해 1층은 카페, 2층은 담앤북스라는 작은 출판사가 자리잡고 있는 아담한 북카페.
그런데 위치가 참 특이하다.
부산 남구청 뒤에 있는 부산정보고 정문이라니. 대학교 라면 모를까 고등학교 정문 간판 옆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특이한 북카페다. 왠지 점심시간이면, 학교 선생님들의 티타임은 전부 이곳에서 이루어질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입구에는 출판사 이름이 적힌 간판들을 담쟁이가 자연스레감싸고 있고, 입구를 들어서면 마당은 꽤나 넓다.
야외에는 다래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 아래 애외 벤치가 있고, 해가 좋을때는 밖에서 커피한잔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바닥에 있는 저 돌은 멧돌같이 생긴걸 장식으로 놔둔것 같기도 하고, 진짜 맷돌 같기도 하고 사진을 좀 더 잘찍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긴 하다.
내부는 북카페 답게 다양한 장르의 책들과 이 곳 출판사 책들이 꽂혀있다. (주인이 출판사 사장 겸 카페 사장님 같다)
도심속에 이렇게 아담하고, 고즈넉한 공간이 그것도 전혀 카페가 없을법한 곳에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내부에는 조용히 책을 읽는 비구니 스님 한분, 열심히 사진을 찍고있는 여자, 내가 들어가고 한참 후에야 지인과 나누던
얘기를 끊고 '어서오세요'를 하는 사장님.
그야말로 이 곳은 "도심속 그들만의 공간" 같았다.
아마 이 곳은 늘 익숙하고 자주오는 동네 사람들, 출판관련 사람들, 항상 책을 읽기 위해 오는 사람들 처럼 이미 이 장소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공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낯선 공간에 들어서는 이방인 처럼 느껴졌다.
그게 오히려 사장님이 인사를 늦게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유였다.
그리고, 잠시후에는 나도 어느새 이 공간안에서 커피한잔과 함께 그들처럼 원래 이곳에 있었던것 처럼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글을 적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 당분간은 10분거리에 있던 갤러리 카페 "그리다"를 잠시 배신하고 이 곳에 자주 올 것 같다.
다른 개인 카페처럼 메뉴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푸치노등과 와플이나 팥빙수 등 많이 준비해뒀지만
늘 그랬듯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 주문했다.
언제부터인가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 한잔만 시키고는 다시 안가게된 카페가 많아졌다.
물론, 커피가 맛없어도 다른 이유들 때문에 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곳 커피는 한잔 4000원에 나쁘지 않은,
썩 괜찮은 커피를 내놓았다. 보통의 복합형 카페의 단점은 커피가 별로인게 대부분이었는데.
사진을 대충 편집하고, 오랜만에 글을적고 책을 읽으니 마치 출판사에 글을 넘기기 위해 마감에 임박한 작가가 된 마냥
신나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이런 착각을 만들어 주는 장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니 좋은 듯 하다.
나오는 길에 문 입구에 좋은 글귀가 하나 눈에 띈다.
"창밖을 봐~
바람이 불고있어
하루는 서쪽에서
하루는 북쪽에서
인생이란 그런거야
우린 그 속에 있고...
영화 <베티블루 37.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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