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벽사이를 타고 흐르는 보리수 나무 카페_ 린덴바움(Lindenbaum)
Published by Ironwoo2,
어지러워진 방 정리를 하다 한 동안 쓰지 않던, 핸드드립 기구들을 깨끗이 씻고 정리를 하다가 원래 제 자리인것 마냥
비스듬하게 눕혀진 은색의 작은 직사각형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올해 봄 쯤 아는 동생 녀석이 멕시코를 다녀오면서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이라며 가져다 준 "로스팅 된 원두 한 봉지"
그게 5월 쯤 이었으니, 벌써 4개월이 지났다.
이 녀석을 곱게 갈아서 100도씨의 뜨거운물에 녹여줘야지..했던 생각만 수십번 그렇게 이 녀석은 이 자리에 공기를 접촉하지
못한채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생각난 김에 어디 원두 갈아줄 곳이 없나.. 찾을겸 이틀전에 마신 "예가체프 G2"핸드드립이 생각나서 주변을 찾기 시작했다.
비는 그쳤지만 묵직한 노트북 가방을 등에 업고, 한 손에는 곧 세상에 빛을 보게될 원두 한봉지.
그렇게 찾아간 곳은 경성대와 부경대 사이 골목에 위치한 "린덴바움(LINDENBAUM)" 카페
린덴바움(LINDENBAUM)
독일어로 "보리수 나무"이자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보리수 나무에서 따온 가게 이름.
간판앞에 적어 두신 독일어는 노래 중의 가사를 발췌해서 적어 놓으셨다는데,
"친구여, 이 곳이 쉽터가 될테니 잠시 쉬어가라"라는 대략의 뜻이랍니다.
사진에는 잘 안나와있지만, 사실 이 골목은 원룸촌이자 몇년전에만 해도 내가 살았던 원룸 골목인데
1층을 개조해 카페로, 윗층에는 전부 원룸인 구조이다.
요즘 경성대 골목에 작은 카페나 소품샵들이 이런 형태로 되어있는데, 건물 1층을 감싸고 있는 나무 줄기들이
시멘트를 자연스레 감싸고 있는 모습이 지나가다 다들 한번쯤은 쳐다보고 갈만한 것 같다.
사실, 원두를 가는 것 보단 요즘 쓸데없이 글이 자꾸 쓰고 싶어지면서 덩달아 핸드드립 커피도 점점 구미가 당긴다.
나름 커피 공부를 혼자 취미단계에서 배워보겠다고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마셔보지만, 아직까지 내 혀는 분간을 못하기에
이렇게라도 핸드드립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들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마셔봐야 실력(?)이 늘 것 같았다.
와인을 처음 마셨을때도 그랬다.
남들처럼 소주, 맥주에 빠져 있을 대학2학년때 특이하게도 와인을 시작했고, 한 동안은 와인에 빠져 살았었다.
커피도 알면 알수록 와인와 비슷한 태생과 과정을 거치기에 좀 쉬울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세계인듯 하다.
아무튼 오늘은 그냥. 기분보다는 "린덴바움" 사진 몇장과 오늘 마신 커피 얘기나 끄적이는 정도로 끝내야 할듯 하다.
가게 내부는 테이블 3개와 BAR형태의 의자 3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며 많아봐야 12명이 앉을수나 있을까?
하지만 들어서자 마자 원두의 향이 코끝을 찌른다.
가지런하게 또는 일렬로 나열된 원두를 보관한 병에는 상당히 많은 종류의 원두들이 있다.
순간 "어..뭘 마셔야 하지?"란 생각부터 들었던 것이, 그래도 지금까지 꽤나 많은 종류를 마셔봤다고 할 수 있는데도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하긴..와인 역시 지금까지도 항상 새로운 종류의 와인에 매번 신기해 하고 있으니까..
어떤 것을 주문할지 물어보며, 생각보다 투박하게 생기신 바리스타(사장님)께서 "에티오피아 코케허니"를 추천해 주신다.
커피를 공부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자세히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면서 얘기해 주셨는데,
와인도 예전엔 지역단위나 국가단위에서 점점 농장단위로 브랜드화 되어가는 것처럼, 커피도 점점 소규모 브랜딩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심지어 앞마당에서 자란 커피나무와 뒷 마당에서 자란 커피나무도 이름이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포도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리고 더 자세하게 분류가 되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잠시의 글을 쓰는 시간동안 내가 마신 커피는 두 잔.
"에티오피아 코케허니" 와 "르완다 버본 샤이닝"
코케허니는 사실 원래 나의 취향과는 조금 동떨어진 녀석이다.
원래는 와인의 까베르네 쇼비뇽처럼 묵직하고 탄닌이 강한것 처럼 묵직하고 커피 특유의 다크한 맛을 좋아하는데, 코케허니는
마치 호주 쉬라즈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다. 원두를 갈때부터 와인향을 뿜어내고 커피잔에 담겨서 첫 모금을 마실때는
이제 막 병입한지 1년밖에 안되는 듯한 가벼움을 나타내지만, 코로 느껴지는 향은 잘 숙성된 쉬라즈의 병 뚜껑을 열었을때 처럼
과일의 향미를 뿜어낸다. 조금 식으면서, 달콤한 향이 따라오면서 점점 와인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원래는 무화과 향이라는데..
나에게는 알콜이 들어간 듯, 약간 취기가 오를 정도였다.
절대 묵직하지 않은 가벼운 어린 와인 한모금을 마실때 처럼 "어?" 하지만 목구멍을 타고 흐른 뒤 뿜어내는 과일향을 정말 좋았다.
추가적으로, 사장님이 설명해 주시길 코케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코케 워시드(Washed) 와 코케 허니(Honey)
워시드는 원두를 물에 씻어 기계로 말리는 방식이고, 허니는 자연 그대로의 원두를 자연건조 시켜 과육이 씨앗에 스며들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워시드 보다는 코케허니가 더 향미와 산도, 풍미가 좋다고 한다.
르완다 버본 샤이닝
사실 한잔만 마시려 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어느새 두 잔째.. 오늘 잠자긴 힘들겠구나.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르완다 커피
코케허니와는 또 다른 산미를 지닌 아프리카 커피
산도로 치면, 코케허니는 산도2, 버본 샤이닝은 산도1
원래의 내 취향과 비슷하다.
첫 맛부터 다크초콜릿이 느껴지고, 무슨 향인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과일향이 난다.
이상하게도 와인을 마실때는 대략적으로 어떤 과일인지 알겠는데.. 커피는 아직까지 정확히 표현하기가 힘든듯 하다.
버본 샤이닝은 (내 혀가 이상한건지 모르겠지만..) 와인에서 느껴지는 오크향같은 것이 살짝 느껴진다.
커피의 둔탁하면서 거친 맛이 나에게 오크향처럼 느껴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르완다 버본 샤이닝은 좀 더 마셔봐야 이해가 될 듯 하다.
요즘 커피 마시러 여기저기 다니면서, 느끼는 건 갑자기 독서량과 글쓰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번잡한 생각이 많아져서 일까? 아니면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많아져서 일까?
생각지 못한 여러가지 일들을 머릿속에서 적어내고 싶은 욕구가 끊이질 않는다.
그 촉매제가 커피가 되어가는 것을 아닐까 한다. 예전에 와인 향을 맡으면서 와인잔에 코플 박고는 킁킁대면서
와인 향을 깊이 들이마실때면 마치 "마약을 하는 기분이야~"라고 외쳤던 것 처럼.
지금은 잠시 "커피와 외도 중"이지만 이제는 커피잔에 코를 대고 킁킁대는 모습이 어색하지는 않은 것 같다.
경성대와 부경대 사이 골목에 위치한 "린덴바움" 카페
핸드드립의 향에 이끌려 자주 오게될 것 같은 장소다.